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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D 2편: 젊은 천재가 남긴 유산 본문

난제를 파헤져 선보이다

BSD 2편: 젊은 천재가 남긴 유산

필로마테스 2020. 9. 3. 05:02

안녕하세요 난제를 파헤쳐 선보이다, 난파선입니다. 지난 편에선 BSD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소개해드렸습니다. 한번 간략하게 요약해볼까요? $y^2=x^3+ax+b$라는 꼴의 방정식을 타원 곡선이라 합니다. 여기서 수학자들은 $a, b$가 둘 다 유리수인 경우만 집중하지요. $A$와 $B$가 둘 다 유리수인, 곡선 위의 좌표점 $(A,B)$를 유리점이라고 정의했었습니다. 어떤 타원 곡선은 유한개의 유리점을 갖는데, 어떤 타원 곡선은 무한히 많은 유리점을 갖는다고 보여드렸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것이 바로 BSD가 출발한 기원이었지요. 이 유리점들에 관련된 타원 곡선의 대수학적인 성질과 해석학적인 성질이 있는데, 이 둘의 연결에 대해 질문한 것이 바로 BSD였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이 대수학적인 성질을 이해하기 위해, 대수학의 기본 언어가 되는 군(group)이란 것에 대해서 파헤쳐보겠습니다.

 

젊은 천재가 남긴 유산

 

보통 수학과 학생들이 2~3학년이 되면 소위 '진짜 수학 과목'들을 접하게 됩니다.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주로 위상수학, 대수학, 해석학, 정수론 등 중에서 선택적으로 수강하지요. 저도 수학과에 들어가 처음 커리큘럼을 봤을 때 이 '대수학'이라는 분야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대수학? 그거 방정식 풀어서 $x$값 찾는거 아닌가? 고등학생 때 했던 걸 왜 다시 배우지?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수강했다가, 된통 깨진 기억이 있습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깨달은 것은, 대수학이란 것이 단순히 $x$값만 찾는 학문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대수학은 $x$를 찾는 것에서 기원했습니다. 하지만 대수학은 수천년이 넘는 역사에 걸쳐 발전을 거듭한 끝에, 지금은 수학적 구조를 파악하는 학문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우리에게 익숙했던 $x$값 찾기가 어떻게 구조에 대한 학문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일까요? 먼저 대수학의 역사를 살펴볼까요?

 

"너 대수학 들어? 난 고등학생 때 다 뗐는데!" 라고 말하면 수학과들이 싫어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수학 문제로는 2차 방정식이 있습니다. 중학생 때 달달 외웠던 근의 공식을 기억하시나요? $ax^2+bx+c=0$를 만족하는 해는 $x = \frac{-b\pm \sqrt{b^2-4ac}}{2a}$이다. 중고등학생들이 줄줄 꿰고 있는 이 공식은 과연 언제 발견된 것일까요? 놀랍게도 2차 방정식의 해는 기원전 2000여 년경, 고대 바빌로니아 시절서부터 알려져 있었답니다. 물론 지금과 같은 현대적인 표기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4000년 전의 사람들이 2차 방정식의 해를 찾았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수학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방정식들을 풀어왔지요. 그리고 기원후 9세기경 페르시아의 수학자 알 콰리즈미(al-Khwarizmi)가 당대까지 알려진 모든 방정식들의 풀이법을 모아 책으로 발간합니다. 그는 각각의 형태의 방정식마다, 어떤 과정을 취하면 해를 구할 수 있는지 적어놓았지요. 그 책의 이름은 al-Kitab al-mukhtasar fi hisab al-jabr wa'l-muqabala, 줄여서 al-jabr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대수학을 뜻하는 영단어 Algebra가 되었고, 알 콰리즈미가 보였던 풀이방법을 그의 이름을 따 알고리즘(algorithm)이라고 부르게 되었죠.

 

3차 방정식의 해법이 발견된 것은 2차 방정식의 해법이 발견되고 약 3500년의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 사이 수학의 메카는 바빌로니아에서 그리스, 페르시아, 그리고 유럽으로 옮겨졌지요. 3차 방정식의 해법을 발표한 인물은 이탈리아의 수학자는 카르다노였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약간의 논란이 있습니다. 타르탈리아라는 수학자의 해법을 뺏었다는 일화가 있거든요.) 생소한 이름이지요? 아마 고등학교 수학 과정에서 배우지 않기 때문이지요. 왜 2차 방정식의 해법은 배우는데 3차 방정식의 해법은 배우지 않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3차 방정식의 해법은 정말 끔찍하게 생겼거든요. 물론 이 해법이 끔찍하게 복잡하더라도, 이것이 4차 방정식의 해법을 찾으려는 수학자들의 열정을 멈추지는 못합니다. 3차 방정식이 정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4차 방정식도 정복되지요.

 

3차 방정식 $ax^3+bx^2+cx+d=0$의 일반적인 해법.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이유.

 

여기까지 읽은 분들이라면, 수학자들의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 짐작하셨겠죠? 물론 5차 방정식의 일반적인 해법이지요! 유럽의 여러 수학자들은 이 문제에 덤벼들었으나 모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러기를 약 250년, 수학자들은 자연스럽게 의구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5차 방정식의 일반적인 해법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진 않을까? 하지만 불가능하다면 그것이 왜 불가능한지 보여야 하는 것이 수학자입니다. 불가능한 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증명하라. 정말 불가능해보이는 일이지만, 놀랍게도 이 일을 성공한 수학자가 있습니다! 그것도 무려 둘이나 말이죠!! 후대의 수학자들이 5차 혹은 그 이상의 고차 방정식의 일반적인 해법을 찾는 시간낭비 할 것을 막아준 두 수학자의 이름은 닐스 헨리크 아벨(Niels Henrik Abel)과 에바리스트 갈루아(Evariste Galois), 둘은 서로의 연구 결과를 모른채 독립적으로 이것을 증명합니다. 

 

둘의 방법은 조금 차이가 있는데, 아벨은 '사칙연산과 루트로 표기할 수 없는 해를 갖는 5차 방정식'에 초점을 맞췄다면, 갈루아는 '5차 방정식들의 해가 갖는 구조'에 초점을 맞춥니다. 시기상으로 아벨의 증명이 더 일렀기 때문에, '임의의 5차 혹은 그 이상의 방정식의 일반적인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리를 '아벨-루피니 정리'라고 부릅니다. (루피니는 18세기 인물로, 먼저 이 문제에 착수했습니다.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증명에 오류가 있었지요. 후에 아벨이 이것을 발전시켜 증명을 완성합니다.) 아벨의 방법은 훌륭했지만, 갈루아의 방법에 비하면 조금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5차 방정식은 다음과 같은 형태를 갖습니다.

$$ax^5+bx^4+cx^3+dx^2+ex+f = 0$$

 

그리고 일반적인 해법이란, $a,b,c,d,e,f$와 사칙연산 $+, - , \times, /$, 그리고 루트만으로 표현가능한 해를 말합니다. 4차 이하의 방정식의 경우는 그것이 가능하지만, 5차 그리고 그 이상의 경우는 불가능하다, 그것이 아벨-루피니 정리입니다. 하지만 모든 5차 방정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x^5 - 2 = 0$이라는 아주 특수한 5차 방정식을 살펴보죠. 이 방정식의 해는 $\sqrt[5]{2}$로, 상수와 루트만으로 쉽게 표기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5차 방정식은 일반적인 해법이 없는데, 위에 제시한 것과 같이 아주 특수한 5차 방정식은 이러한 해법이 존재합니다. 그러면 이 '특수한' 경우는 언제일까요? 해를 표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5차 방정식은 어떤 방정식들일까요? 안타깝게도 아벨-루피니 정리는 이 질문에 대해선 침묵합니다. 반면 갈루아의 풀이는 이 질문에 대한 답도 포함하고 있지요.

 

아벨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갈루아의 업적은 실로 대단합니다. 저는 종종 이걸 이렇게 비유합니다. '아벨과 갈루아 둘 다 잔잔한 호수에 파도를 일으켰다. 아벨은 돌을 던졌고, 갈루아는 지진을 일으켰다.' 아벨은 이 한 문제를 증명하는데 그치는데 반해, 갈루아는 수학의 새로운 분야를 혼자서 창시해버렸기 때문이죠. 덕분에 대수학은 수학사에 다시 없을 거대한 변혁을 맞이합니다. 그 목적을 $x$를 찾는 것 에서 구조를 파악하는 것으로 말이지요. 이것을 과거의 대수학과 구분하기 위해 현대 대수학 혹은 추상 대수학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수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면 다시 대수학을 기초부터 수강하게 되는데, 주로 Dummit과 Foote가 공저한 책으로 공부합니다. 이 책은 약 10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인데, 처음 수백 페이지에 걸쳐 군의 성질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룹니다. 그리고 또 수백페이지 동안 환, 모듈, 체 등에 대해 다루다가 후반부에 갈루아 이론에 대해서 다룹니다. 갈루아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배워야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죠. 놀라운 사실은 갈루아가 자신의 이론을 발표했을 때는, 군, 환, 체와 같은 개념은 수학에 없었습니다. 아직 대수학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 5차 혹은 그 이상의 고차 방정식의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엄청난 직관으로 증명에 필요한 수학적 개념들을 혼자 만들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이론을 담은 논문을 출판하게 되지요. 그러니 당대 수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갈루아가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친절하게 논문을 쓰는 편이 아니었던 데다가, 그 방대한 양의 개념을 한 편의 논문으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니 말이죠. 덕분에 갈루아는 자신의 생애에 빛을 보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의 논문과 아이디어는 사후 많은 수학자들의 연구 끝에 갈루아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합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딴 이론이라니, 수학계는 물론 과학계에서도 유례없는 엄청난 업적이지요.

 

앞서 소개한 아벨과 갈루아는 기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같은 문제에 착수했다는 점, 젊은 나이에 엄청난 결과를 남겼다는 점, 마지막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는 점이 있습니다. 아벨이 아벨-루피니 정리를 완성한 것이 22세때의 일이었으며, 갈루아가 논문을 완성한 것은 20세 때지요. 아벨은 평생을 가난속에서 보냅니다. 베를린 대학의 교수로 발탁되어 곤핍한 생활고를 마무리할까 했으나, 그 임용 소식이 아벨에게 닿기 직전 그는 자신의 약혼녀의 곁에서 26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뜨게 되지요. 갈루아는 프랑스 혼란기에 태어나, 아버지가 자살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그가 남긴 논문은 살아 생전엔 인정받지 못했지요. 그러다가 한 여인과의 스캔들에 휘말려, 자신의 명예를 위해 여인의 약혼자와 결투를 하게 됩니다. 그 결투에 패배하여 총상을 입은 갈루아는 다음 날 새벽 병원에서 자신의 동생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21살이라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말이지요.

 

19세기 수학에 거대한 혁신을 일으킨 두 청년 수학자, 아벨(왼쪽)과 갈루아(오른쪽)

 

수학이 수군수군? 군도 수군수군!

 

대수학의 역사도 살펴봤으니, 이번엔 대수학의 가장 기본언어가 되는 군(group)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혹시 다들 중학생 때 배운 집합을 기억하시나요? (요즘도 중학교에서 가르치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아마 어렴풋이 '모임'이라고 기억하실 겁니다. 네 맞습니다, 집합은 모임이죠. 어떤 모임인가, 바로 객관적인 조건을 만족하는 것들의 모임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원소라고 불렀지요.

 

군 역시 집합입니다. 원소들로 이루어져있지요. 하지만 군과 집합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바로 연산입니다. 집합은 단순한 원소들의 나열이기 때문에, 각 원소들끼리 연산을 취해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1반 학생의 모임'이라는 집합에 철수와 영희가 있다한들, 철수와 영희를 더하거나 곱하는 등 연산이라는 행위가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군은 연산이 허락되어 있습니다. 군에 포함된 두 원소들을 약속된 연산을 취해 계산해줄 수 있지요. 요약하자면, 군은 연산히 정의된 집합이다. 그러니 앞으로 군을 $G$로 그 연산을 $\circ$로 표기하겠습니다.

 

물론 연산이라는 약속과 집합만으로 군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4개의 규칙이 필요한데 이걸 군의 공리(Group Axioms)라고 부르지요. 아니 무슨 규칙이 4개나 돼! 걱정마세요, 야구는 물론 축구보다도 쉬운 규칙입니다. 한번 이 규칙들을 찬찬히 살펴볼까요?

 

1. 결합법칙을 만족한다.

 

결합법칙이란 성질은 기억하시나요? 아마 초등학교 교과서에 '덧셈은 결합법칙을 만족해요' 같은 말을 보신 기억이 어렴풋이 있으실 것입니다. 결합법칙이란, 연산이 여러 개 있을 때 계산 순서에 상관없이 같은 값을 가지는 성질을 말합니다. 예컨대 $1+2+3$이라는 식은 앞의 두 수를 먼저 더해도 되고, 뒤의 두 수를 먼저 더해도 됩니다. 즉, $(1+2)+3 = 1+(2+3)$을 만족한다는 것이지요. 너무나 당연한 성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학에서는 결합법칙을 만족하지 않는 연산자가 많답니다. 예컨대 뺄셈이 있지요. $(3-2)-1 = 0$인 반면 $3-(2-1) = 2$이니까요. 군을 정의하는 연산자는 이 결합법칙을 만족해야 합니다. 이걸 수학적으로 표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임의의 원소 $a,b,c$에 대해서 $(a\circ b) \circ c = a \circ (b \circ c)$를 만족해야 한다.

 

2. 군은 연산에 대해 '닫혀있다.'

 

흔히 닫힘이라고 불리는 성질인데, 군 안의 임의의 원소를 갖고 연산을 취해도 그 결과값이 군 안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간단한 예제로, $X = \{1,2,3\}$이라는 집합을 떠올려 볼까요? 이 집합은 덧셈에 닫혀있지 않답니다. $1+3 = 4$인데 이것이 $X$의 원소가 아니기 때문이죠. 반면 자연수는 어떤 수든 서로 더해도 여전히 자연수입니다. 자연수의 경우는 덧셈에 닫혀있지요. 이것을 수학적으로 표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임의의 원소 $a,b$를 취했을 때, $a \circ b$는 $G$의 원소여야 한다.

 

3. 항등원이 존재한다.

 

0이라는 숫자는 특별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수를 가져와도 0을 더하면 여전히 같은 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처럼, 연산을 취했지만, 여전히 같은 값을 얻을 때 이 원소를 해당 연산의 항등원이라고 부릅니다. 군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주어진 연산자에 알맞은 항등원을 반드시 포함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자연수의 집합은 0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즉 자연수는 덧셈의 항등원을 포함하지 않으므로 군을 이루지 않지요. 이것을 수학적으로 표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임의의 원소 $a$에 대해서 $a \circ e = a$이며 $e \circ a = a$를 만족하는 원소 $e$가 존재한다.

 

4. 각 원소에 대한 역원이 존재한다.

 

앞서 0이 덧셈의 항등원이라고 소개했지요. 이걸 보면 $5$와 $-5$가 아주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둘의 합이 0, 즉 항등원이기 때문이지요. 이 경우 우리는 $-5$는 $5$의 덧셈의 역원이라고 부르지요. 그 역의 경우도 성립합니다. $5$가 $-5$의 덧셈의 역원이기도 하지요. 군은 그 모든 원소에 대해서 그것의 역원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수학적으로 표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임의의 원소 $a$에 대해서, $a \circ b = e$이며 $b \circ a = e$를 만족하는 원소 $b$가 존재한다. 

 

만약 집합 $G$가 $\circ$라는 연산자에 대해 군을 이룬다면, $(G,\circ)$를 군이라고 정의합니다. 연산자에 대해 잘 알려져 있는 경우는 편하게 $G$라고만 표기하곤 하지요.

 

자 군의 규칙은 이렇게 4가지입니다. 이것들을 기반으로 몇 가지 군의 예제와 반례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멋드러진 수학 기호들을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자연수, 정수, 유리수 등 다양한 수의 집합의 표기법입니다. 

 

먼저 자연수의 집합입니다. $1, 2, 3, \ldots$ 등을 말하죠. 이 집합은 $\mathbb{N}$으로 표기합니다. 자연수를 의미하는 Natural Numbers에서 온 말이지요. 정수는 $\ldots, -2, -1, 0, 1, 2, \ldots$ 따위를 말합니다. 자연수와 0, 그리고 음의 정수로 이루어져 있지요. 이것을 $\mathbb{Z}$로 표기합니다. 수를 의미하는 독일어 Zahlen에서 온 말이지요. 그다음은 유리수입니다. 1편에서도 언급했지만, 모든 분수들을 말하지요. 수학적인 정의로는, 정수의 비율로 표기할 수 있는 모든 수입니다. 유리수의 집합은 $\mathbb{Q}$로 표기하는데 몫을 의미하는 영어 quotient에서 왔지요. 반면 정수의 비율로 표기할 수 없는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sqrt{2}$, 그 외에도 $\pi$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무리수라고 부르지만, 특별한 기호는 없습니다. 그리고 유리수와 무리수를 모두 합친 수를 실수라고 하지요. 실수의 집합은 $\mathbb{R}$, Real Numbers의 앞글자를 따온 것입니다. 그보다 큰 복소수의 집합은 이번 편에서는 다루지 않을 예정이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들을 기반으로 다음의 집합들이 주어진 연산에 군을 이루는지 한번 판별해보시겠어요?

 

수의 분류

 

다음의 집합들이 주어진 연산자에 대해 군인지 판별하시오. ($\hat{}$는 거듭제곱, $\mathbb{Q}^\times$는 0을 제외한 모든 유리수 집합을 말합니다.)

 

$$(\mathbb{N}, \hat{}), (\mathbb{N}, +), (\mathbb{Z}, +), (\mathbb{Z}, \cdot), (\mathbb{Q}, +), (\mathbb{Q}^\times, \cdot), (\mathbb{R},+), (\mathbb{R}, \cdot)$$

 

일상 속의 군

 

군이라는 것이 흥미롭긴 합니다만, 숫자니 연산이 이런 것들만 다뤄서 그런지 뭔가 추상적이게만 느껴집니다. 뭔가 손에 잡히는 예제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진 않나요? 그래서 현실 속에서의 군의 예제를 소개하며 이번 편을 마무리해보겠습니다.

 

먼저 시간을 떠올려볼까요? 8시에 5시간이 지나면 몇 시가 되나요? 1시가 됩니다. 어째서 1이 나오나요? 그건 시계가 12시까지밖에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시계를 염두하고 계산할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12를 0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12보다 더 큰 값이 나오면, 12를 빼버리는 것이지요. 이러한 연산을 모듈로 12에서의 합동 연산이라고 부르고, $\mathbb{Z}/12\mathbb{Z}$라고 표기한답니다. 이 집합에는 0에서부터 11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12는 0으로, 12보다 큰 숫자들은 12로 나눴을 때의 나머지와 같은 값으로 여겨줍니다. 예컨대 이 구조에서 15는 3과 같고, 29는 5와, 그리고 1200은 0과 같습니다. 

 

$(\mathbb{Z}/12\mathbb{Z} , +)$가 군을 이루는지 확인해볼까요? 먼저 덧셈은 결합법칙을 만족합니다. 또한 이 집합은 덧셈에 닫혀있습니다. 설령 $8+5=13$이라 12보다 더 큰 숫자가 나왔다 해도, 이 집합에서는 $13$을 $1$로 취급해주기로 약속했었으니까요. 항등원인 $0$은 물론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역원도 존재합니다. 예컨대 $4$의 역원을 떠올려 볼까요? $4$의 역원은 $4$와 더했을 때 $0$이 되는 값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 집합에서는 $0$을 $12$와 같게 여겼으므로, 더했을 때 $12$가 되는 값을 찾아주면 됩니다. 즉 $8$이 $4$의 역원이 됩니다. 위와 같은 논지로 $n$의 역원은 $12-n$이라는 것을 쉽게 파악해줄 수 있습니다. 이 군은 앞서 소개한 많은 군들과 다르게 원소의 개수가 유한합니다. 이러한 군을 유한군이라고 부르지요. 반대로 원소의 개수가 무한한 군은 무한군이라고 부릅니다.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 모듈로 12의 합동 연산을 이루지요

 

비슷한 예제로는 각도가 있습니다. 제가 북쪽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볼까요? 여기서 오른쪽으로 $540^\circ$ 만큼 돌았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럼 결국 저는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 것일까요? 똑똑한 분들이라면 $360^\circ$를 돌면 어차피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니, $540^\circ$ 돈 것은 그 보다 $360^\circ$만큼 적은 $180^\circ$를 돈 것과 같은 것을 쉽게 파악하실 것입니다. 즉, 저는 남쪽을 향하고 있겠군요. $360^\circ$를 $0^\circ$로 취급하는 연산, 많이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그렇습니다. 앞서 소개한 합동 연산입니다. 즉 각도는 군을 이룬다고 볼 수 있겠군요. 그렇다면 이 군은 유한군일까요 무한군일까요? 어? $0^\circ$에서 $359^\circ$까지니까 원소의 개수는 360개, 그러니까 유한군아니야? 하고 생각하셨다면 제 함정에 걸려든 것입니다. 각도가 꼭 자연수에 꼭 떨어지라는 법은 없지요. $0.5^\circ, \frac{17}{35}^\circ$, 혹은 $\sqrt{2}^\circ$도 이상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각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군은 무한군을 이루지요.

 

또 다른 재미있는 예제로는 사다리 타기가 있습니다. 예컨대 3명이 즐길 수 있는 모든 사다리들로 이루어진 집합을 떠올려봅시다. 자 그렇다면 이 집합엔 어떤 연산을 정의할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두 사다리 게임을 이어 붙이는 것을 연산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즉 $A$라는 사다리와 $B$라는 사다리가 있다면 $A \circ B$는 $A$ 사다리 아래 $B$ 사다리를 접붙인 것을 말합니다. 

 

$A\circ B$를 $A$아래 $B$를 붙인 것으로 정의하자.

 

 

먼저 이 사다리 게임은 결합법칙을 성립할까요? 다시 말해, $A,B,C$라는 사다리가 있을 때 $(A \circ B) \circ C$와 $A \circ (B \circ C)$는 같은 사다리일까요? 먼저 $(A \circ B) \circ C$를 보면 처음으로 해야 할 것은 $A$아래에 $B$를 접붙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얻은 사다리 아래 $C$를 접붙여야 하지요. 즉 사다리의 순서로 보면 $A, B, C$인 셈입니다. $A \circ (B\circ C)$는 먼저 $B$ 아래 $C$를 접붙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렇게 얻은 사다리를 $A$ 아래에 접붙이지요. 즉 마찬가지로 $A, B, C$ 순서대로 사다리를 이어서 타라라는 의미가 되지요. 즉 결합법칙을 성립합니다. 사다리 게임은 그럼 이 접붙임 연산에 닫혀있을까요? 물론이죠. 사다리 아래 사다리를 접붙여도 여전히 사다리지요.

 

그렇다면 이 사다리 게임의 항등원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수평선이 없는 수직선 3개' 즉 위아래로 작대기 3개를 말합니다. 물론 이런 사다리 게임을 가져가면 친구들에게 욕을 먹겠지만 말이에요. 이 '아무 의미 없는 사다리'는 어떤 사다리든 그 위에 붙이든 아래에 붙이든 여전히 똑같은 결과만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이 군의 항등원에 해당하겠지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사다리 $e$가 항등원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역원은 어떨까요? 자, 저와 두 친구가 사다리 게임을 한다고 가정해볼까요? 위에는 1, 2, 3 번호로 표기되어 있고 아래에는 가, 나, 다 한글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만약 제가 1번을 타고 빠라바라 빰빰 하고 내려갔는데 '다'에 도달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반대로 '다'에서 거꾸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몇 번에 도착해야 할까요? 1번에 도착해야할 것입니다. 사다리는 아래에서 올라가나, 위에서 내려가나 같은 결과를 주기 때문이지요.

 

사다리를 거꾸로 타고 올라간다는 것, 그 사다리를 위 아래로 뒤집은 뒤 타고 내려오는 것과 같습니다. 기존의 사다리를 $A$, 위 아래로 뒤집은 사다리를 $\bar{A}$라고 표기해봅시다. 그리고 이 것을 접붙인 것, 즉 $A \circ \bar{A}$를 위에서부터 타고 내려와볼까요? 먼저 $A$는 1번을 '다'로 보낼 것입니다. 즉 중간지점에서 우리는 왼쪽에서 세번째 줄에 있겠지요. 이제 $\bar{A}$에 해당하는 사다리를 마저 타고 내려가면, 이 사다리는 '다'를 1번으로 다시 보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A \circ \bar{A}$는 1번을 1번으로 보내는 사다리가 되겠지요. 같은 논리를 이용해 2번과 3번이 같은 번호로 보내지는 것을 보일 수 있습니다. 즉 이렇게 해서 얻은 $A \circ \bar{A}$는 가장 단순한 작대기 3개짜리 사다리 $e$와 같은 결과를 내뱉습니다. 물론 그 형태는 복잡하지만, 그 결과만을 보면 같은 사다리나 다름이 없지요. 그러므로 임의의 사다리 $A$의 역원은 $\bar{A}$가 됩니다. 모든 사다리에 대해 이 규칙이 성립하니, 역원의 존재가 증명되는군요. 그러므로 사다리 게임은 군을 이룹니다. (실제로 수학에서는 사다리 게임 군을 다루진 않지만, 이와 비슷한 대칭군이란 것을 다룹니다.)

 

 

$A \circ \bar{A}$사다리를 타보면 $e$와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다리 게임 군은 앞서 선보인 많은 군의 예제와는 조금 다른 특이한 성질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선보였던 군들의 연산자는 덧셈과 곱셈입니다. 이 두 연산자는 연산의 순서를 바꿔도 괜찮을 뿐만 아니라(결합법칙) 원소의 순서를 바꿔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즉 $a+b = b+a$ 그리고 $a \cdot b = b\cdot a$도 만족하지요. 이러한 법칙을 교환법칙이라 하는데, 교환법칙도 성립하는 군을 아벨군(abelian group)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글을 찬찬히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이 이름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파악하셨겠죠?

 

하지만 사다리 게임은 조금 다릅니다. $A$라는 사다리와 $B$라는 사다리가 있을 때 $A$ 아래 $B$를 붙인 것과, $B$ 아래 $A$를 붙인 것은 다른 결과를 주곤 합니다. 즉 사다리 게임 군에서는 $A \circ B \neq B \circ A$입니다. 지금 본 연산처럼, 원소의 순서를 바꿨을 때 다른 결과를 내놓는 연산도 있습니다. 군의 조건에 교환법칙을 성립해야 한다는 조건은 없었으므로, 이런 연산으로도 충분히 군을 이룰 수 있지요. 이런 군들은 비아벨군(non-abelian group)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비아벨군은 아벨군에 비해 훨씬 더 까다로운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앞으로 저희가 다룰 BSD의 내용에서는 비아벨군에 대한 이야기는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런 특이한 군도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소개해본 예제였습니다.

 

1번에서 시작했을 때 $A \circ B$는 2번에, $B \circ A$는 3번에 도착한다. 즉 $A \circ B \neq B \circ A$

 

 

오늘은 대수학의 가장 기본 개념인 군의 정의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어떤가요, 지금 읽은게 내가 알던 수학이 맞나 싶지는 않으셨나요? 숫자보다는 집합, 연산, 조건 이런 것들에 더 집중한다는 생각이 드시진 않으셨나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이것들이 제가 처음에 언급했던 구조를 이루는 것들입니다. 오늘은 군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정보만을 파악했으니, 다음 편에선 군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번 난파선에서 뵙겠습니다.

 

문제 해답

결합법칙 닫힘 항등원 역원 결론
$(\mathbb{N}, \hat{})$ 성립하지 않음 만족 존재함; $1$ 존재하지 않음 군을 이루지 않음
$(\mathbb{N}, +)$ 성립함 만족 존재하지 않음 모든 원소의 역원이 존재하지 않음 군을 이루지 않음
$(\mathbb{Z}, +)$ 성립함 만족 존재함; $0$ 존재함 군을 이룸
$(\mathbb{Z}, \cdot)$ 성립함 만족 존재함; $1$ $2, 3, 4, \ldots$ 의 역원이 존재하지 않음 군을 이루지 않음
$(\mathbb{Q},+)$ 성립함 만족 존재함; $0$ 존재함 군을 이룸
$(\mathbb{Q}^\times, \cdot)$ 성립함 만족 존재함; $1$ 존재함 군을 이룸
$(\mathbb{R},+)$ 성립함 만족 존재함; $0$ 존재함 군을 이룸
$(\mathbb{R},\cdot)$ 성립함 만족 존재함; $1$ 0의 역원이 존재하지 않음 군을 이루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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